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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과 이별하는 일 | 런던과 이별하는 일 D-30

처음엔 아무 감흥도 없었다.

내가 원했던 건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이나,  골드 스미스(Gold Smiths)였지 런던은 아니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뚜렷한 꿈만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런던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영국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한국을 떠났다.

해리포터 시리즈 한 편을 보지 않았고, 영국에서 유명한 배우 한 명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영국은 그저 나에게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나라였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난 유학 길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 아트 스쿨들을 조사해 PPT로 만들고,

외동딸을 외국으로 떠나보내기 싫은 부모님과 2년을 

씨름하면서 힘들게 얻어낸 유학이었다.

 

핵가족 형태의 3명뿐이지만 우리 집엔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도 나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나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그곳이 내가 꿈꾸는 곳이라고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부모님의 상상력 이상의 목표나 꿈을 희망할 때 생기는 마찰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공감하겠지만, 그 여정은 꽤 고달팠다.

 

 지금은 잘 살고 있는 이종 사촌 언니는 유학 당시 학교 내 인간관계 문제로 마음이 많이 다쳐 돌아왔었다.

헝가리로 유학을 갔던 친척 언니는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했지만,

한국에 잘 들어오지 않아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부모님께서는 아마 내가 두 케이스 중 한 케이스라도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셨을 것이다.

 

 

 

 채 스무 살도 안됐던 나는  무엇 때문에 부모님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런던에 그렇게 오고 싶었던 걸까?
또, 무엇이 아쉬워 떠나기 전 30일을 카운팅 하며 글까지 쓰고 있는 걸까?

 

 먼저,  런던에 가장 오고 싶었던 이유는 구글에 이름을 치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 같은 소녀도 알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들,

디자이너들이 유명한 졸업생(Notable  Alumni)으로 줄줄이 나오는 아트 스쿨들 때문이었다.

19살 소녀에게는 이런 정보들이 의미가 있었다.

 

그때는 유명한 누가 나온 학교에 가면 나 또한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나오는 줄 알던

순수하고도 무지한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시간은 인생에 있어 값진 시간이 됐지만,

세계 몇 대 디자인 스쿨을 나온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판타지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26살의 나는 명문대의 명성이 학교 자체의 우수한 커리큘럼 영향도 물론 있지만,

졸업생 개개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 기여 정도에 달렸다는 주장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 싶었던 두 학교의 유명한 졸업생들(Notable Alumni)

 

 

 

 둘 째는, 런던에 있는 작고 큰 전시들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시간만 남으면

네이버 카페 Space K의 국내/해외 작가 게시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게시판을 들어가면 Space K의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이 업로드 한 아티스트 소개 글을 볼 수 있었다.

 

소개된 모든 아티스트들이 필연적으로 영국 출신은 아니었지만,

검색을 해보면 뉴욕이나 런던에서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전시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런던으로 떠나는데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작업을 하면

더 큰 영감과 더 깊은 작업이 나올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런던에서는 볼만 한 전시가 끊임없이 열리고, 뮤지엄의

상설 전시들은 제한 없이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대 초반 영 어덜트(Young Adult)를 위한 전시 티켓 할인 등의 혜택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런던은 지난 4년간 기대만큼이나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작년 하반기에 관람하면서 모은 전시나 공연 브로슈어들 ©Noni.

 

 

 

마지막으로는 당시 다녔던 포트폴리오 학원의 영향도 컸다.

학원에는 유럽 소재의 아트 스쿨을 목표로 하는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의정부 가구 거리에서 들여온 임스 체어 카피로 가득 찬  학원 교실에서 매일 작업을 같이 하면서

자연스레 작업적으로도, 삶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혼자 꾸는 꿈보다 지속적이고, 힘이 셌다.

같은 목표를 달려갔던 사람들 덕분에 나의 런던으로 가는 꿈은 더 깊이 뿌리를 내렸고, 그렇게 런던에 왔다.

 

 


 

 

그런 런던을 이제 떠난다. 내 꿈이었던 도시,  내 마음속에 두 번째 고향으로 영원히 남을 도시,

20대 초반을 온통 보낸 이 도시를 한 달 뒤에 떠난다.

런던을 떠나는데 이렇게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곳에서의 삶과 문화를 사랑했던 탓이다.

우연히 태어나고 자란 도시가 아니라, 내 필요와 욕망에 의해 쫓아온 도시였던 탓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서 다시금 펼쳐질 20대 후반이 기대된다.

다만, 런던이라는 지리적 환경 안에서 갖고 살았던 나의 낭만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지난 런던에서의 삶을 되짚으며 글을 써보려고 한다.

 

부디 내가 쓰는 글 중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유용할 수 있길 바라면서.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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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bnail image by Christopher Rusev

Alumni image from Google 

Leaflets by Noni.